결국 남는 것은 후회와 미련 뿐. 내가 끝이 없도록 미안해하고 죄를 구한다해도 그들에게 가 닿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한 문장의 휴짓조각 밖에 되질 못한다. 나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종이를 낭비했는가. 지금껏 얼마나 많은 마음을 낭비했는가. 쓰여진 마음은 결코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 피폐함이란 결국 바닥난 마음이 안쓰러워 덧붙이는 혼자만의 위안일 뿐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다. 그 깨달음을 지금껏 닳도록 깨닫고 깨달아도 모자란 이 마음은 결국 나의 부족함이 원인일 것이다.
그렇기에 평생토록 나는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2013. 5. 13. 02:20






어쩌다보니, 최근 시청하는 영화마다 삶에 있어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들 뿐이다. 더 파괴적인 생각을 심어주거나 그러한 생각을 아주 약간만 누그려트려줄 영화를 원하는데 영화를 고르기 전에 줄거리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찾아보니 그럴만도 하다. 실은 겁이 많아서 얌전한 설교를 듣는 것을 택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 언젠가부터 흘러가는대로 뭐라도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며 수많은 사소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조금씩 무감각해져 왔는데 그런 날 꾸짖는 듯한 영화였다. 더 깊게 생각하고 하나하나의 작은 인과관계를 크게 파악하여 조심히 관찰하라고. 하지만 이 교훈에는 비약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두들기고 있는 키보드 때문에 내일 아침을 맞이하는 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할 것이며 지금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때문에 내일 당장 신변에 위험이 생길 것이라고 판단하지 못하는 것처럼, 매일 손목에 매달려있는 손목시계가 나의 삶과 죽음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Stranger than fiction> 이라는 것이겠지.
자신의 예견된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주인공의 노력 중에 자신의 이야기가 희극인지 비극인지 가려내는 것이 있다. 자신을 미워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싶은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며 남은 삶의 방향이 어느 방향으로 향할 지 따져보는 것이다. 마치 그녀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의 전지전능한 작가인 마냥.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나에게 와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렴풋하게나마 그 캐릭터와 나 사이의 괴리에서 나의 부족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어쨌든 영화는 내게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조금 더 깊게 관찰 할 것을 당부했으며 당분간은 그러기로 마음 먹었다. 내 두 눈 앞에 언젠간 펼쳐질 소설보다 더 낯선 현실에 대한 기대감으로.




땅에 떨어져 구르는 사과 하나가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시발점이 된다면 난 거기서 허망함을 느낄까 분노를 느낄까.






2013. 5. 9. 22:51





주말의 영화에 대한 얄팍한 감상들.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

SNS의 몇 줄로 이렇게 영향을 주는 하는 사람은 몇 없으리. 재미있다면 나도 같이 재미있고, 슬프다면 나도 같이 슬픈, 그런 공감대를 형성시켜주는 사람들. 이번엔 영화, 그 중에서도 장르는 코메디였다. 그것도 아무생각 없이 웃기엔 나름 괜찮은. 화면연출, 구도라든가 빛의 사용 등 그나마 모자란 지식에 영화를 볼 때 매번 눈여겨 보는 요소들은 그저 그랬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geek 같은 찌질한 주인공의 바보연기에 자꾸만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진짜 바보를 섭외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감은 채 gosh, yes, fine! 따위의 대사를 내뱉을 때는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바보도 빛을 보는 날이 있다고, 종결부 멕시코 친구의 학생회장 연설이 끝난 후 그를 돕기 위해 춘 댄스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으며 영화 내내 조금씩 쌓인 긴장과 갈등을 단번에 해소시키는 역할을 해내고야 만다. 그리고는 더 이상 기억에 남는게 없다. 영화는 모두의 해피엔딩이었고 머릿속에선 자꾸 바보같은 나폴레옹이 눈을 감은 채 욕을 지껄이고 한숨을 쉬고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상대 여배우로 나온 여자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워 실제로 영상안에서 찝적대고 싶었을 정도다.





<21 그램>

뭣도 모르던 고등학생 시절 '영혼의 무게 21 그램' 이라는 메인카피에 좔좔 흐르는 겉멋에 흠뻑 취해 보고 싶었던, 그리고 무려 8년이나 지나서 찾아 본 영화. 실은 당시에 극장에서 내린 영화를 비디오가게에서 빌려 시청을 시도했었지만 그 당시의 나로서는 무척이나 지루해서 바로 뽑아버린 영화였고 조금 더 철이 들고 보고자 다짐했던 영화였다. 의미심장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은 21 그램이라는 제목이 매우 매력적이었지만 영화 자체는 과장된 제목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캐릭터들의 삶의 의미를 뛰어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들 각자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하게 만들만한 영화였다. 문제는 화면을 닫는 순간 백지가 돼버리는 나의 부족함일테다. 21 그램이라는 보잘 것 없는 무게로 영혼을 가볍게 하는 것보다 그 안에 담긴 삶의 수많은 의미를 하나하나 헤아리고 분리시켜 따지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8년 전부터 지금까지 날 뒤흔들던 메인카피 외에 새로 얻은 문장은 'life goes on'. 포기하든 포기하지 않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삶은 결국 계속된다, 전적인 동감은 아니지만. 



베니치오 델 토로는 정말 매력적이고 멋있다. 이런 중년이 되고 싶은 욕구가 일 정도로.





2013. 5. 5. 1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