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n> 테스트 작업





사진은 사실을 기록하는 동시에 증명하는 매개체다. 시간이 지나도 사진이 표현하는 이미지는 그 인물, 풍경, 혹은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빛이 바래 변색되거나 사진 자체의 형태가 일그러진다 하여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사진을 불 태우는 장면을 우리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헤어진 옛 연인의 사진을 태우는 장면은 이제 일종의 클리셰로 치부된다. 여기서 불을 피워 태운다는 행위 자체는 그것의 존재를 無로 되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진은 고작해야 사실의 증명일 뿐 사실 그 자체는 될 수 없음에 모두 불타버린 재를 흩날려버려도 기억은 고스란히 제자리에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진을 태운다는 행위는 삭제의 간접적 경험과 대리만족, 갈등과 고민의 해소와 같은 긍정적 의미를 담아내기에는 충분하다.
<Burn> 작업은 나 스스로 잊고 싶은 내 개인의 기억, 나의 치부 등을 표현하고 더불어 드라마와 같은 흔한 소재부터 시작하여 또다른 개개인들이 간직하고 있는 지우고 싶은 지나간 사실들을 내러티브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장면의 사진을 불 태움으로써 또다시 조금의 만족감을 채우고 꽉 막혀버린 감정을 해소한다. 이러한 행위와 이를 기록한 일련의 작업들은 모두 내 스스로에게 일종의 '위안'이 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 역시, 그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2013. 1. 4. 14:58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 그 사람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랬기에 매번 그것이 하나의 예의이자 지켜야 할 관습인 마냥 버스나 지하철에 그 사람의 모습이 안보일 때까지, 혹은 지하철 개찰구를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 자리에 서서 그 자취를 눈으로 밟곤 했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각자의 헤어지는 길에 열중한 사람들이 내 모습을 다시 돌아봐주지 않음에 더이상 그런 배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내가 더 매몰차게 등을 돌리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내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역시 그래주길, 한번만 더 뒤돌아봐주고 나와 눈 마주치며 인사를 나눠주길 항상 바랐다.
며칠 전이었다. 그 날도 익숙한 사람과 바깥에서의 일을 마친 후 함께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먼저 내리는 그 사람의 등 뒤에 대고 나는 속으로 한번만 더 뒤돌아 봐달라며 외치고 있었다.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그 사람은 전동차의 문이 완전히 닫힐때까지 나를 보며 손을 흔들어주었고 일순 감정들이 북받치고 말았다. 정말 오랜만에 나는 제대로 된 배웅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쉽게 잊는다. 누구든 쉽게 생각지 못한다. 등 돌려 고개 숙인 모습이 헤어짐이라는 순간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인지 그저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된 것에 대한 감사함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뒷모습에 대고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지 못한다. 나는 다시 진정한 배웅의 예의를 갖추겠다 다짐했고 그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기로 다짐했다.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2013. 1. 1. 05:08




기억을 한없이 더듬으며 손질해나가다보면 어떤 한 문장이 남는다.
'나는 착한 아이였나'
그것은 지금의 나를 뒤흔드는 거대한 물음이 되어 큰 파장을 일으킬 것만 같고 현재에는 내재되어 있지 못한 물음으로 대답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일순 두렵다는 생각마저 피어난다.





2012. 12. 28. 0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