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날이 있고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2013. 4. 30. 18:25





어두운 비구름이 밀려나고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오후의 해가 지금 서 있는 전주를 밝혔다. 이 곳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다. 대화를 나눌 사람들이 있고 식사와 술을 함께 마주앉아 즐길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혼자와 같은 이 쓸쓸함은 무엇이 원인일까. 비와 바람소리에 감은 눈을 다시 뜨고 다시 감고. 아침부터 거세게 내리는 비를 마주했을 때부터, 한산한 전주의 젖은 거리를 걸을 때부터였을까. 아무요일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무런 날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냥 주욱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아도 나는 아직도 원인모를 이 감정을 품고선 메이는 목에 괜스레 가슴을 툭툭 칠 뿐이다.





2013. 4. 29. 18:29




음식을 씹는 입


초등학교 4학년 쯤이었나. 급식이 시행된 지 그리 오래지 않아 다 같이 급식실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수저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점심을 먹는다는 사실이 아직은 낯설기도 하고 묘한 즐거움이 있던 때였다. 그 날도 다름없이 친한 반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그 나이에 걸맞는 유치한 농담을 섞어 식판 위의 음식들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대각선 방향으로 시선을 두자 어린 꼬마들 사이에서 홀로 밥을 뜨던 한 선생이 보였다. 교감이었던가, 아무런 직책 없는 그저 한 반의 담임이었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런 직책과는 상관없이 그의 외양만으로도 딱딱함, 정형성, 구속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만으로 줄줄이 그에 대해 묘사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헌데 그 선생이 밥을 먹는 모습에서 끔찍하도록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입 안에 음식들을 우겨넣고 입을 쯔-억 쯔-억 벌려가며 씹던 모습. 주변의 아이들이 찢어져라 하품해도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거라 장담하는 크기로 입을 벌렸다 다물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로 그가 무얼 씹고 있는 지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그 일이 있은 후 현재까지, 나는 항상 입을 다문 채로 음식을 씹는다. 밥을 먹으며 입 벌려 얘기하지 말라든가 소리내지 말라든가 하는 어른들의 가르침(물론, 잘 듣지도 않았다)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의 시각적 충격이 고스란히 내게 흘러들어와 일종의 강박으로 새겨진 셈이다. 가끔씩 거슬리는 크기로 입을 벌려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핀잔을 주기도 하고, 씹는 소리를 크게 내면 괜스레 표정을 찌푸리기도 하면서. 이따금씩 그를 떠올리며 혼자 밥을 먹을 때 장난처럼 입을 크게 벌려가며 음식을 씹어볼 때가 있다. 하지만 이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다물어 조용히 삼킬 뿐이다.





2013. 2. 2. 0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