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편린>



벌써 6년째, 학교.


강의실의 풍경은 항상 비슷비슷하다.





눈이 내린 학교의 벤치.



익숙한 풍경이기에 그만큼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버스 안의 모습.







가족들의 손을 잡고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 또다른 가족에게로 향할 때 혹은,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훌쩍 떠나버릴 때 우리는 매번 이 앞에 섰다.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는 사람들과 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만드는 풍경. 서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에는 행선지에서 맞이할 그 어떤 즐거움과 떠난다는 간접적 일탈감, 그리고 조금의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어우러져 터미널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양 손에 비둘기 모이를 들고 흩뿌리다 그들에게 둘러싸여 당황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당시에는 비둘기 밥을 팔아 금전적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것을 먹으려 달려드는 비둘기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의 비둘기들은 모두 자유롭게 가벼이 날개짓을 할 수 있었다.



종로 주변의 대로변에서는 그 곳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추운 계절이면 군밤장수가 꼭 있어야 할 것 같고 구세군의 빨간 냄비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그런 풍경은 어느 한 곳에만 귀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제일 먼저 연상되는 지역은 종로였다. 나에겐 그 곳이 정갈하고 따뜻하게만 느껴졌다.





흔한 갤러리의 풍경. 다만, 그 누구의 숨소리도, 발자국도 들리지 않던 그 곳은 원인 모를 쓸쓸함만이 자리했었다.



연말이 다가오면 뼈만 남은 앙상한 나무들은 온통 꼬마 전구를 뒤집어 쓴다. 그리고 불을 밝혀 나에게 즐거우라고, 축제의 분위기를 즐기라고 강요한다. 나는 단 한번도 그 불빛들이 아름답다거나 화려해보인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단지 나무들이 불쌍해 보일 뿐이었다.





2012. 12. 25. 16:32




나는 언제쯤 행복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는 요즘.
그 물음에 항상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다.
어제를 밟고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오늘을 보내고 내일도 아마 변함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냥 조금 어지러워서 괜찮지 않을 뿐이다.





2012. 12. 24. 19:48





은행나무


초등학생 시절, 학교를 넘어오는 언덕에서부터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한 그루 보였다. 고려시대부터 자리를 지키던 교목이었는데 그 당시 나무가 1000년이나 살 수 있다는 것에 강한 의문을 품으면서도 그 웅장한 위용에 경의로움과 자부심은 절로 감탄사로 뿜어져 나오기 일쑤였다. 반면, 그만큼 열매의 냄새도 지독했는데 당시 또래 아이들의 거부감에도 나는 그 냄새에 부정적인 인상은 커녕 오히려 그 향긋함을 즐기며 스스로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자만에 빠져있었는지도 모른다. 10여년이 지난 오늘날, 내 모습이 변한 것처럼 그 향취에 대한 인식마저 함께 세월의 변화를 맞이했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코를 찌르는 악취에 숨을 참는 시늉을 하고 바닥에 떨어져 으깨진 열매들을 피하느라 우스꽝스런 자세로 걷는 지금의 내가 나의 인생만큼 더 뿌리내렸을 그 은행나무를 다시 마주한다면, 그 앞에서 나는 그저 다른 이들과 전연 다를 바 없는 어른의 모습으로 서 있게 될까.





2012. 12. 22. 1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