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집에서 꿈만 꿨다. 점심때는 슬펐고 저녁때는 조금 설렜는데, 어쨌거나 잠에서 깨니 꿈은 꿈일 뿐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잠들때마다 꿈에 빠진 것도 오랜만인데 게다가 생생하기로는 비할데가 없어서 하루동안 감정선이 크게 오르락 내리락했다. 꿈이 끝날때쯤 상대역에게 한가지씩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하지만 끝내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것이 영 찝찝해 여기에 적는다. 점심의 당신에게는 이제 내가 예전만한 존재가 못되는지를, 저녁의 당신에게는 어느쪽이 결국 너의 본심인지 묻고 싶다. 실제로 그들에게 가 각각 묻는다면 어찌됐든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문맥없는 헛소리가 아닌 아주 사소하게라도 연결된 자유롭지 못할 물음이라 생각하기에. 하지만, 꿈은 꿈일 뿐. 관계에 종말이 오지 않는 한 저런 질문을 던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적는다.







2014. 3. 15. 22:01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뒤섞여 혼잡해진 밤.







2014. 3. 2. 03:23





항상 옷에 지저분하게 무언갈 묻히고 다니던 어린 시절, 그 시절엔 혼자 귀를 판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귀를 파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면 어김없이 귀이개를 찾아들고 엄마의 곁으로 다가갔다. 눈을 감은 채 엄마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이쪽, 저쪽으로 몸을 바꿔 누우면 간질간질거리며 엄마의 손길이 시원하게 귓속을 청소해주었다. 평균적으로 반년에 한번 노오란 귀지들을 덜어내고 싶은 욕구에 붙잡혔고 내가 찾는 곳은 어김없이 엄마의 무릎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혼자서 귀를 판다고 했을 때의 충격, 처음으로 엄마에게서 귀이개를 되돌려받았을 때의 서운함은 지금까지도 마음 속 구석에 남아 선명하다. 하지만 갓 성인이 된 후에도 혼자 귀를 판다는 것은 쉽사리 용인되지 않는 행위였다. 그 때의 여자친구가 엄마 대신 선뜻 무릎을 내주었고 그 위에 누워 두 팔로 꼬옥 안기며 느낄 수 있는 모든 좋은 감정을 가지려 했다. 심지어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도 믿을만한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귀이개를 쥐어주며 나는 그 앞에 가지런히 누웠다. 대신 파줄 사람이 없다면, 그대로 두면 그만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곧잘 혼자서 귀를 판다. 처음의 두려움과 만족스럽지 못한 간지러움은 아직도 그대로이며 여전히 누군가의 손길이 그립지만 귀를 파야겠다는 생각이 들때면 어김없이 귀이개를 꺼낸다. 어릴 적의 귀를 판다는 것이 충동에서 비롯되었다면 지금의 그것은 필요와도 같은 셈이다. 어쩌면 귀를 파고 싶다는 충동은 누군가의 포근함 위에 눕고 싶다는 흑심의 포장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그 행위를 수행할 수 있게 됐고 앞으로 누군가에게 귀를 파달라고 보채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등 뒤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무뚝뚝하게, 어설프게 귓 속을 긁어낸다. 그러면 그 속에는 간지러움 대신 약간의 통증이 남고, 누군가가 아닌 혼자가 남게 된다. 당신의 무릎에 눕고 싶다는 욕구는 더 두터운 포장지에 싸여 내 속에서 맴돌기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하나씩 모든 일들이 누군가의 손길에서 분리되어 나아가고 나는 그것이 끔찍하게도 싫지만,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체념시키며 나아간다.






2014. 2. 13. 00:56